강화이야기

백수통신6-6

흰코끼리 2021. 7. 22. 09:29



























이번에 강화내성 트레일런닝을
해보니 전에는 무심코 보았던
주변의 노거수를 자세히 보게되었다.
예를 들면
1.동문 망한루 근처
원불교당앞 소재 느티나무(650년)
2. 북문 아래
외규장각옆 소재 은행나무(680년)
3.남문 옆
도로가에 느티나무(450년)
언젠가 통계를 보니 노거수의
다수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였다.
아무튼 다른 나무들보다 두 나무가
생명력이 출중하다고 볼수있겠다.
수백년이라면 요즘 내가 관심있어하는
지질학에서 말하는 수억 수십억년의
돌들의 세계에 비하면 비교자체가
안되지만 적어도 살아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사실만 놓고보면
나이를 떠나 얼마든지
경이롭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
트레일런닝후 북문아래로 내려오니
거대한 수형의 은행나무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생각해보건데 언젠가 볼음도를 갔을때
강화 최고령의 은행나무를 보게되었다.
그 나무는 인상 적인게 은행나무
곳곳에 "돌기"가 있었다.
그런데 할배나무는 그런 것은
보이질 않았다. 그냥 울타리로
들어가서 한번 만져보는 것으로
만남을 마무리했디. 그렇게
내리막길이 끝나면
고려궁지와 외규장각이있다.
북문이나 여러해전 도서관이나
강초를 지나가다 몇번 들러보았다.
고려시대때 원나라와 일전을
불사하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것인데 약 30여년인가
천도기간이 생각?보다 꽤 길었다.
그리고는 다 아는 바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나라가
수전에 약하다고 해도
강화도의 조강 하나를 건너지
못했다는 것은 ...
원나라가 그렇게까지
고려를 밀어붙일 이유가 없던
탓이라거나...급할 것도 없으니
자진해서 항복을 받아내려했던
수작이 아니었을까...
(나만의 생각이다. )
외규장각을 보자니 의괘에 나온
그림의 많은 전각들은 어디로
갔을까...주춧돌도 없이...
아쉬움이 많았다.
아쉬운대로 의괘가 프랑스에서
"영구 임대"로나마
돌아왔으니 다행이었다.
...
강화 초등학교를 지나가니
삼남매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담밖에서 보니 운동장에서
송아와 희조,희종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는 듯했다.
...
그나저나 심도직물의 굴뚝은
목욕탕옆에 생뚱맞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내가 강화에 2001년 이사왔을때만해도
건물이 남아있었다.
심도직물을 비롯해서 강화의
다수의 직물공장은 직물시장의 재편으로
(강화에서 경상도로)
영화의 시절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다녔다는
60~70년대 강화는 경공업 수출 특수로
내륙 어는 곳보다
호시절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
병자호란때 조선과 청나라의
일전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 "은
조선의 대표적인 한심한 임금 반열중에
대표선수중 하나인 인조와
더 한심한 조정대신들 때문에
백성들은 어육이 될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스크린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심도직물" 굴뚝옆에는
조그만 비각이 있는데
그때 주전파 김상헌의 형인
김상용을 기리는 비각이다.
병자호란때 강화에서
화약을 껴안고 자결을 했다는데
김상헌보다는 양심이 있었던 걸까?
그래봤자...헤아릴수없는 백성들의
억울한 원혼은 돌아올수 없었다.
나는 두 형제와 당시에 조정을
이끌었던 주전파 무리들에
조선의 유림들의 이데올로기를
용서할수 없다.
...
강초를 지나가다 강화를 홍보하는
전단지가 몇장보였다.
트레일런닝을 마친후
50년 전통이라는 "강화국수집"을 찾아갔다.
강화 경찰서앞인데...
글쎄 ...아침을 거른 것에 운동을 마친 상태라...
뭐를 먹어도 맛있을 거라는 생각에
비빔과 잔치국수 두그릇을
전례없이 시키는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그냥 국수였다.
너무 큰 기대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중앙시장 뒤편
할머니국수집을 가봐야겠다.
그나저나 강화홍보전단에는
새벽해장국집도 나오질않았다.
내가 추천하는 유일한 맛집인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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