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동 터울림은
유진상가 맞은편 2층건물에
세들어 있었다.
판소리 교습소도
같은층에 있었다.
그 곳을 가게된 사연은 이랬다.
85년도 이대앞
경의선 신촌역근처
신선소극장?에서든가
연희굿패의 뭐시기 공연을
해서 구경을 갔었다.
그런데 마당극
비스무리한것을 보았는데
극중에 풍물이 반주로
하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한국인으로써
붓글씨와 국악기 하나는
다룰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언젠가 백안의 이국인이
붓글씨와 우리 악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 나름 동기부여가 되서
다짐했었다.그래서 붓글씨는
대충? 배웠고 악기를
모색하던중이었다.)
그래서 단원중에 아담한 여인에게
"풍물을 배우고자하는데
어찌하오리까?"
해서 받은 것이
"이리로 가보심이..."
우주에 한장 남은 이름도 고상한
#터울림 교습소 명함이었다.
(확인해보니 명함을 준
여인은 노마라는 단원이었다.)
나는 그 명함을 들고
홍제동 터울림을 찾아갔었다.
그렇게 찾아간
홍제동 터울림은 외관이
연노랑 타일 외벽을 두른
고색창연한 2층 건물이었다.
터울림은 2층에 사무실과
연습실이 있었다.
연습실은 대형거울이 몇장있었고
모조 호랑이문양의 두틈한
천이 벽면을 꽉 채웠다.
천장에는 종이로 만든
빈계란판이 가득 붙어있었는데
녹음실에서 본 시설과
비슷해서 수제로 만든
방음지려니 하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모퉁이에는 수도꼭지가
벌서듯이 있었는데
흡사 우물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보니 연습후 뒷풀이를 하면
그곳에서 설걷이를 했다.)
사부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주교종 사부가
나의 첫대면이자 사부가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풍과는
거리가 먼...말투도
어눌하고...그런데 나머지
사부들의 다수가 그랬다.
ㅎㅎㅎ)
이종하 사부도 있었는데
이 양반은 두레
사부들과는 전혀 다른
도시풍의 하얗고 마른 쳬격에
학생모습이 완연했다.
농대출신이 아닌
이공계 출신이라든가...
아무튼 두레 출신과는
출신?성분이 달라보였다.
가끔 와서는, 언젠가
전통문화강의를 했던게 생각났다.
대충 기억해보먼
문화를 바라볼때
"서구의 기준이 아닌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봐야한다."
라며 자기 정체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게 터울림 생활과
신촌 철물가게의
이중생활을 시작하였다.
언젠가는 강습을 마치고
뒷풀이를 마친후 한밤중에
별난 쌩쑈를 했는데...
신촌까지 깽맥이를
치면서 갔다는...
우스운 애기를
하나 더 하자면 어느날
오싸부가 터울림을
문닫아야 한다며
충격발표을 했었다.(사연은 생략)
그래서 두레출신
박유신형이 트럭을
가져오고 나와 둘이서
2층공간의 악기와 기타
집기를 들어내서
악기와 소품들을
트럭에 가득실고 나머지 것들은
건물 옥상에 임시?로 쌓아두었다.
그리고 터울림 살림살이를
실고 간 곳은 마포경찰서앞
민요연구회였는데
이곳도 지하실이었는데
(당연히 임대료)
여기는 신기하게 우물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수정이었다.)
그런데 민요연구회에는
생각치 못한 의외에
인물이 있었다.
이름하야 백충효 상병,
민문연 뭐시기라든데
내 군대생활에 꼴통
인물로 기억되는
대대 행정병이었다.
군화에 제몸을 슬리퍼처럼
질질 끌고다니는
ㅎㅎㅎ
아무튼 사제인간이되서
영화감독이 꿈인
고난?이 훤히 보이는
때 이른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
홍제동 터울림...
사부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오영호.주교종.김주연...
그리고 관계자
김재철,이인형.노광훈.박유신...
풍무악의 방승환.조진형.영주...
그렇게 이름을 부르니
소루지해안에 예쁜
노을이 보였다.
202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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