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터울림은 나의 운명 3(부제/불광동시대 ,나의 화양연화여.)

흰코끼리 2024. 11. 8. 20:32

터울림이 부활한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래서 이른바
十匙一飯...
학생들중에는
현진,제성.태익...
일반인들은
수진,내하.정혁...
(기타 이제는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선후배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여럿이 함께
공갼을 찾았고
오윤의 북치는 사람이
상징도안이 되어
간판을 걸게되었다.
한때 이 곳이
단란주점이었고,
주인이 야반도주했다는
그곳은 당장이라도
맥주와 양주의 잔들이
부딛치고  
농염한 불빛과 음악으로
남녀들의 은밀한 밀어가
들리는듯 했다.
그러나 이제 그 곳은
換骨奪胎,
오염되고 낡은시대에서,
새롭고 젊은시대로
갈아엎는 역동적이고
역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터울림이 단란주점에서
거듭나서 제2기의 시작이
된 것은 새삼
의미심장한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터울림은
십시일반 정신이오,
두레정신으로
공간도 스스로 만들었고
(스치로폴로 방음벽 붙인다며
본드에 취해서 ...ㅎㅎㅎ)
방승환 사부를 비롯한
풍무악등의 실기 재교육과
여러 지역의
전수같은 훈련으로
실기무장이 다져졌다.
그때는 터울림 참여자가
교사와 학생외에도
시그네틱스와 같은
현장 생산직 노동자,
속옷판매자와 택시기사,
신문사 기자,집배원등
다양했었다.)
불광동 시대는 홍제동을
이어서 소모임이 계속되었다.
내가 속한 모임은 한때
북소리+어울림+벼리의
합체였는데
#북어뼈...
모임이 흥할때는
여주와 산업대,김포청년회등
두레를 다녔다.
지금이야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이 됬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후 이것도 해체되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뒷꿈치였다.
본래는 터울림에서 연애결혼을
하게된 부부들의 모임이
시발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이 커져서 한참때는
열쌍+@였고
삐약이 2세들까지 모임을
올때면 인원은 무려
30여명이 되었다.ㅎㅎㅎ
한동안 터울림의 매년공연때에
일일주점을 하기도 했으니...
이런 저런 뒷꿈치의
호시절은 인간의 생로병사처럼
자연스럽게 해체를 맞이했다.
꿈같은 시절이었다.
나의 화양연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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