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정조와의 만남

흰코끼리 2013. 2. 4. 00:21

 

 

 

 

 

 

 

 

 

 

 

 

 

 

 

 

 

“깨끗하고 두터운 편지지는 사용하기가 너무 사치스러워, 매 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휴지(休紙)를 다시 뜬 것으로 편지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공장(工匠)은 솜씨가 졸렬하여 사용하기에 적합지 않습니다. 금년에는 시험 삼아 화성의 지공 (紙工)에게 뜨게 했는데, 서울에서 만든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이에 300폭(幅)을 보냅니다.”(1799년 10월 17일)

조선시대 22대 왕 정조가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다.

...

 

오늘 수원을 다녀왔다.

융.건릉을 거쳐 용주사를 둘러보고 수원 화성까지...

정조의 흔적을 오래전 아이들과 들르고는 오랫만이다...

조선시대는 27대의 왕이있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왕정국가의 한계는 숙명이며

역사발전의 필연적 과정일것이다.

더욱이 조선시대는 중국과는 다르게

신권이 왕권보다 강했던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신권이라는것도 왕권을 견제하는것을 넘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림집단과

훈구대신,척신들의 이익이 우선이 아니었던가

그들에게 과연 백성은 있었을까?

그래서 조선은 선조 (1592년)임진년에는

일본의 외침에 무기력하게 당했고

인조때는 청나라에게 정묘.병자호란과같은

굴욕을 마침내는 고종때는 병자수호조약과

을사늑약,경술국치로 5,000년 역사를 잃게 되지 않았나...

...

상고해보면 우리는 항상 "영웅"을 기다려왔다.

수없이 많은 고단한 역사를 가진 우리라면

더욱이 그렇지 않겠나.

상상속의 영웅일수도있고 경험속에 영웅일수도있다.

그러나 영웅은 혼자 만들어지는것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모든것을 해결할수있는 전지전능하지도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조"를 생각하다가

"장길산"을 생각하기도 했을것이다...

"좌절된 새로운세계"

물론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대가 정말 이전과 다른

혁신의 시대가 됬을것이라는 확신은 무리일수있다.

그러나 최소한 고립된 세계관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만남은 조선의 성리학만의 세상에서

한걸음 더 나갈수있는 계기가 되지않았을까...

이런 시도가 한차례 두차례 쌓이다보면

우리의 미래는 조금 달라질수도 있지않았을까...

"만약"이라는 가정의 역사가

우리를 위로할수있을지 모르지만

...

"지난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현판의 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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