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食母의 추억

흰코끼리 2024. 4. 18. 11:27

밥을 해주었던
식모 할매와
우리 할배는 가끔
소리없는 전쟁이
나곤 했다. 이유는
식모 할매가 술한잔드시고
할배에 주사를 선물?하신 것이다.
추정해보면
할배의 식성과 기타
식모 할매와의 관계는
뭐랄까...
금성인과 화성인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 할매가 나가신후 다른
할매가 오셨는데
우리 할배와 다행히도
별? 부딪힘없이
지내셨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 또래 였거나
약간 위였던 누나들도
있었다...
어린 처자들이
객지에 나와
연세드신 할배와
남초중딩 두명에
엄마 철물가게일을 하는
수한이 형등
댓명의 식사와 빨래등
소소한 집안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에 남들가는
학교도 못가고
남의 집에서 일했을
그녀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일부는 기억이 나지만,
철없는 시절이었다해도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다 지난 일이겠지만
아무쪼록
그녀들이 가족과 무탈하게
잘 살고있기를 바랄뿐이다.
(오래 전이라 이름은 기억이
나질않았는데 사촌형에게
물어봤더니 나보다 두살위인
김순*이라고 말해주었다.
연천 이모님 동네에서 왔던
처자도 그중에 한 분이다.)
@뱀다리
60~70년대는
한국 산업화 초기였다.
그래서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지방에서 어린 남녀들이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마치고 서울같은
대도시에 공장 노동자나
버스 안내양등으로
내몰려진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의
일이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애쓰신 덕이
제일 컸고
외가와 주변의 도움도 있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고도성장도 한몫했다.
그러나 인생사가  그렇듯이
다수의 부모님 세대와
누나,형님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은 공평하지 않았다.
...
그래서인가...
나는 그들에게
설명할수없는 연민과
미안함이 갑자기
내몸에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그날 라디오 방송에서
나온 청취자의
글 때문이었다.
지금 시대에 살고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들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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