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읍약수"는 1978년도에 김의수.황인복.김복동
이렇게 세분이 약수터를 중수했다고 비석이 있으며
그외에도 함께하신분들의 이름이 비문에 쓰여있다.
또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오래전 "고려 천도시절 "가뭄이 들어 온나라가
힘들었을때 하늘에 기도를 간절히 하니
지금의 약수터에서 물이 솓구쳐
하늘과 땅도 울고 임금과 신하도 울고
백성도 울게되어 이른바 오읍약수가 됬다한다.
그러나 이말은 전설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몽항쟁시절"
고립된 상황에서 집권층의 번민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이 어렵지않게 상상된다.
...
강화산성 주변은
고려궁지와 철종 잠저 고풍스런 성공회 성당과
수많은 역사의장면을 목격했을
600년이 넘는 수령의 은행나무.
성을 돌면서 멀리 바라보이는
북녘을 남녘을 대했을 고려 천도와 정묘호란등
백성과 집권층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작년 "사단법인 강화나들길"에 이정표 개선책에
대해 일반적사례를 들어 제안했는데
이제 되었다. 하곡 정재두 선생묘역도 정비를 요청했더니
얼마후 되었다. 물론 나의 한마디로 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작년에 진강목장이나 강화의 봉화대 복원이나
분오리, 선수돈대등 보수를
"군정게시판에 제안"을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요청한것이 다될수는 없지만 솔직히 관련 공무원이
담당 부서일을 뚜렷한 역사의식과 철학을 가지고
임하는지 부서장과 지자체 단체장은 그런
소명의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예산문제와 법령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현재 가능한것부터 할수있는 적극적 사고가 필요하겠다.
추신:
북문앞에 의자의 디자인이 단순하고
견고하게 보이면서 고급스럽기까지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