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을 돌다보면
서문근처에 "연무당"이있다.
본래 조선시대때 군사훈련하던
곳이었다는데
지금으로 애기하면
"강화도 해안경비사령부"정도 된다고 한다.
물론 진무영 ,열무당등
여러가지 말도있다.
...
이런곳에서 국가의 조약을 맺는것은
다분히
"불순한 저의"가 보인다고 할수있다.
또한 정묘호란에 청과 형제의
약조를 맺었던
연미정을 생각해보면 강화는 불행했던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하는 "기구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비문에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화에 들러
강화도조약을 회고하며 후손들에게
경계의 뜻으로 비석을 세웠다고 했다.
이 또한 국방유적의 전국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듯하다.
수호조규
대일본국과 대조선국은 원래부터
우의를 두터이 하여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나 지금 두 나라의 우의가 미흡한 것을 고려하여 다시 옛날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친목을
공고히 한다. 이는 일본국 정부 가 선발한
특명 전권 변리 대신인 육군 중장 겸 참의
개척 장관 흑전 청륭(구로다 기요타카)과
특명 부전권 변리 대신인 의관 정상형
(이 노우에 가오루)이 조선국 강화부에
와서 조선국 정부가 선발한
판 중추부사 신헌과 부총관 윤자승과 함께
각기 지시를 받들고 조항을 토의 결정한 것으로써 아래에 열거한다.
이하 12조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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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선왕조 500년"은 절망적인
선택을 하게되고
돌이킬수없는 "망국"으로 달리는
브레이크없는 기차가 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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