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정조와의 만남4

흰코끼리 2013. 2. 8. 13:51

 

 

 

 

 

 

 

 

 

 

 

 

 

 

 

 

 

 

 

 

 

 

 

 

 

 

 

 

 

 

 

 

 

 

 

화성성역의궤

 

 

 

 

 

 화성성역의궤

1801년(순조 1) 정리의궤청(整理儀軌廳)에서 화성 성곽축조에 대한 기록을 모아 간행한 책.

 

1. 10권 9책. 활자본.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묘를 1798년(정조 13) 10월 화산(華山)으로 이장한 후 수원을 수경(水京)으로 승서(陞敍)하고 유수(留守)를 둔 후 천도 계획하에 3년간에 걸쳐 축성한 곳으로, 조선시대 축성기술이 총집결된 대표적인 건축이다. 화성성곽 축조는 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 8월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축조 후 정조의 명으로 축조기록 간행을 준비하던 중 1796년 11월에 원고가 완성되었다. 체제는 정리의궤청의 의궤의 예를 따르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축성제도를 도입한 축성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했으며 축성에 사용한 각종 기계의 그림과 설명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 건축기술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 청나라 강희재(康熙宰)는 중국 고금의 방대한 문헌들을 모아 활용하기 좋게 금 6000여 항목으로 분류해 재구성한 세계사상 최대의 유서(類書)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1000여권을 편찬 중국에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조선 22대 이산 정조(正租)대왕은 이 고금도서집성 5022권을 거금 2150냥에 구입 하여 우리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정조는 그 중 독일인 선교사 J. Schreck 가 서술한 서양 축성법(築城法)이 분류된 기기도설(奇器圖說) 한 책을 정약용에게 주어 연구하게 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은 이를 근거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정조에게 바쳤다. 여기에 녹로와 독창적인 설계에 의한 거중기(擧重機.또는 擧重器)가 제작 되였고 이 녹로와 거중기로 현재 수원성인 ‘화성 성역’을 쌓게 하였다. 이 거중기의 자세한 설계도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수록되어 있다.

 

 

 

3.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1795년(정조 19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화성(華城 : 지금의 수원 성곽)에서 벌였다. 100리 길을 행행(行幸)하여 화성 행궁(華城行宮)에서 8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진찬(進饌) 외 문무과방방(文武科放榜)·행성조(行城操)·어사(御射)·사미(賜米)·양로연(養老宴) 등 부속 행사를 다채롭게 펼쳤다. 그리고 노량진 앞 한강에 배들을 잇대어 다리를 놓은 주교(舟橋)를 설치하였다.

정조가 이렇게 전례가 없을 만큼 거창하게 행사를 치른 까닭은, 1795년이 정조 재위 20주년에 해당하는 데다 자전(慈殿)의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고, 사도세자의 구갑(舊甲)이며, 혜경궁 홍씨의 주갑(周甲 : 환갑)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라고 이 의궤에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화성 건설의 명분을 높이고 화성을 통한 왕권 강화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의궤의 글씨는 목활자인 생생자(生生子)를 본떠서 제작한 금속활자인 정리자(整理字)로 찍었고, 그림은 목판화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의궤로는 맨 처음 활자와 판화를 함께 갖춘 인쇄의 체제로 제작한 점에 서지학적 의의가 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권수 1권, 본편(本編) 5권, 부편(附編) 4권이고 모두 8책으로 나누어졌다. 권수에는 택일(擇日)·좌목(座目)·도식(圖式)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전의 의궤와는 달리 도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양식적 측면에서 보면, 이 의궤는 정교한 새김 기술을 바탕으로 당시 도화서(圖畫署)를 주도한 김홍도(金弘道)식의 화풍을 표현하여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용주사부모은중경 龍珠寺父母恩重經≫·≪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 등과 더불어 정조시대 판화 양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이전의 의궤도가 마치 지도처럼 일종의 표시가에 가까운 데 비하여, 이 의궤에서는 판화로 제작되고 당시의 새로운 화풍을 반영하여 회화성이 풍부하여 회화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의궤는 체재·기법 등에 있어서 ≪화성성역의궤≫를 비롯하여 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 進饌儀軌≫·≪진연의궤 進宴儀軌≫·≪진작의궤 進爵儀軌≫ 등에 영향을 미쳐 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국립중앙박물관 및 김학수(金學洙)가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그림이 필사로 되어 있고, 김학수 소장본은 목판화에 채색을 입힌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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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들은 여러 브로그의 글과 사진을 인용하였다.

 

수원 화성을 둘러보니 "정조"라고 하는 임금이 조선 27대왕중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등을 볼때 더욱그러했다.

아무쪼록 이런 훌룡한 역사적 자료가 잘 보존하고 망실된 유적을 복원하는 등 보존에 각별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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