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성곽 이야기

흰코끼리 2013. 2. 13. 23:13


















 석수변수 김선운 : 변방의 석수(석공)
우두머리는 김선운이다.
...
성벽곳곳에는
‘진자종면(眞字終面 : 진자구역끝지점)’,
‘강 자육백척(崗字六百尺 : 강자구역 600척)’등 각 구역을 표 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인원 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道 또는 縣의
담당 지역을 표시하여
‘의령시면(宜靈始面), 경상남도 의령
시작 지점’,‘ 흥해시 면(興海始面),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 시작 지점’등의
글씨 가 성벽 돌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공사 실명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후대에는 아예 감독관의 직책과 이름 및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다.
가경 9년(1804년) 갑자
10월일嘉慶九年甲子十月日 패 장(牌將)
오재민(吳再敏), 감관(監官)이동한..
東翰변수 (邊首), 기술자, 편수 용성휘..
聖輝등을 기록한 글씨도 보인다.
...
한양 도성은 1395년(태조 4)에 쌓기
시작하여 1397년에 완성되었으며
당시 성벽의 둘레 길이는
6만 3,000척이었다.
이 도성은 1422년(세종 4)부 터 다시
대대적으로 증·개축되었으며
그 둘레가 8만 9,610척으로 늘어났다.
그 후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훼손된 것을
1704년(숙종 30)부터 5년간 대대적으로
수축하 여 조선시대 말까지 그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나 1915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성곽과 성문의 일부가 파괴되었고
도시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곽이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1963년 성곽 복원 필요성이 대두되어
북악산과 인왕산 지역의 성곽 복원이
진행되었고, 1975년부 터 1980년까지
현대적인 의미의 보수와 개축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또한 광희문, 숙정문, 혜화문 등에
대한 복원 도 이루어졌으며,
2000년대 들어 다시 대대적인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알수없는 브로그 일부 인용
 
사대문 그림을 조사하다 보니
서울성곽을 돌면서
시대별로 축성한 모습이 각기
달라 흥미로왔다.
또한 성곽길를 따라 가다 끊어지거나
훼손된길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 골목안에
아직 원형을 가진것을 보면
안도감과 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성곽을 축성할 당시 기록이
성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곳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숙정문 주변과 낙산 방향과
북한산성 성벽 ,
남산 주위와 수원 화성에도 있다.
수백년전 돌과 그것에 새겨진 글씨,
아 ~
무엇이라 형용하기어렵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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