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장군 루덴도르프는 "뱀에 홀린 토끼처럼
적의 선전에 당했다"고 고백했다.
보급을 제때 받지 못한 많은 독일군이
연합군의 항복 권유 전단에 흔들려 투항했다.
2차대전 때 연합군
심리전 부대장 매클루어는 1개 비행대대를 동원해 적진에 항복 요령을 담은 전단을 뿌렸다. 독일군이
'명령'에 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아이젠하워가 서명한 명령서 모양으로 만들었다. 폭탄보다 위력이
크다고 해서 '종이폭탄'으로 불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하버드대에서 일본어와 동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던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와 제자들이 미군 심리전에 참여했다. 라이샤워 팀은 항복을 치욕으로 여기는 일본군에겐 항복
권유 대신 다른 전술을 고안했다. 공습을 한 뒤 '내일 아침 7시 다시 폭격한다'는
전단을 뿌리고 이튿날
예고대로 폭격해 공포심을 안겼다. 반면 일본군은 미군의 전의(戰意)를 떨어뜨린다며 전단에 성(性)
묘사를 많이 넣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한국전쟁에서는 양쪽에서
모두 25억장의 전단이 뿌려졌다.
전단을 뜻하는 영어 빌(bill)을
일본인들은
'비라'라고 발음했고
우리에겐 '삐라'가 됐다.
1953년 살포된 '미스터 백(白)구두'라는
삐라가 가장 유명했다.
북측 휴전협상 대표 남일이
흰 부츠를 신은 사진 옆에
다 떨어진 헝겊 신발을 신은
중공군 탈영병 사진을
대비시켜 중공군의 반감을 자극했다.
▶미국은 월남전, 걸프전, 파나마 침공 때도 삐라 심리전을 폈다. 2003년 이라크 공격 전에도 1600만장을 뿌렸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남북의 삐라 700장을 전시해 둔 강원도 정선 '삐라박물관'을 소개하면서 "남한 정부와 미군을 비난한 북한 삐라는 폭력적 표현으로 되레 사람들을 반공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남한 삐라는 함경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도 떨어져 "세상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고 한 탈북자가 말했다.
▶탈북자들은 2003년부터 풍선으로
북한에 삐라를 보내고 있다.
지난 2일 군사실무회담에선 북한 대표가
개성공단 폐쇄까지 들먹이며 삐라 보내기를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삐라 보내기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탈북자들은 계속하겠다고 한다. 눈과 귀가 틀어막힌 북한 주민에게 탈북자들이 목격한 자유와 번영의 실상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미 박물관에 들어간 구시대 유물 삐라가 북한에서만큼은 여전히 ...
장천두가 쓴글이다.
삐라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보니
그 중에 하나 골라봤다.
어린시절 "삐라에대한 추억"은
소풍때나 야산에서 주어서는
학교나 파출소에 갖다주어야하는
별난?종이였다.
이제는 체제 우위에서 살포된다는
삐라가 남쪽에서 다시 보이니
...씁쓸하고 거시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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