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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양가산댁 4

흰코끼리 2020. 2. 12. 22:54








영화 기생충으로 온 나라가 아니 전세계가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

 지하에 반지하 그것도 모자라 반지하 셋방...

영화에서도 나오지만은 지하나 반지하는

집으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점이 많다.

도시 설계나 건축전문가가 아니라도 ...

영화에서 나오는 냄새는 필수요.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온다면...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그래서 함께 마라톤을 하는

알라와 글을 나누다가

유레카!

그래 내가 살았던 집에 대해서 써보자.

ㅎㅎㅎ

어머니와 아버지가 파주 /연천 감박산에서

시골 생활을  마치시고 서울로 상경하셨다.

알다시피 그때는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학자들이 말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기도 전인

1960년전 어는때 였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으니

시골도 도시도 먹고살기가 팍팍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시절 한양 4대문 밖인 

신촌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만들어진지 오래된 동네가 아니었다.

호박밭에 ...

연세대만이 그마저도 소박한 규모였다.

그러나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당시에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의 누나인지 일가와

백인엽과 백선엽등 이른바 100번지에는

쎈 사람들이 살아서인지

다른 곳보다 신촌은 변두리?였음에도

신촌로타리에서 연대주위가

일찌기 포장되었다고 한다.

...  

내가 태어난 곳은

현재 신촌 현대백화점 부근이었다.

지금은 현대백화점 별관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한때는 작은 외할아버지 소유였었고

현대백화점 편입전에는 "연희궁 프라자"였다.

또한 신촌 전철역옆

지금은 없어진 그랜드 백화점터

(한때는 화원이었다)도

고인이된 작은 외할아버지의 소유였다.

나와 내동생은 그렇게 2층 상가건물에

속해있는 "덕흥철물"이라는 곳에서 자랐다.

태어난 곳은 덕흥철물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는데

그때 당시 구두가게가 있던 자리였다고 들었다.

당시에 세들었던 가게들의 면면을 보면

2층에는 사진가게와 당구장

1층에는 목욕탕. 페인트가게. 책방. 문구점.

구두점 .음반가게. 철물점. 국수집 .

식품점 .양품점 ... 

목욕탕 이름은 "덕산탕"이었고 건물외벽은

누런 타일색으로 기억한다.

철물가게 뒤로는 상가 공용의 재래식

화장실1개 수도 1개가 있었고

상가별로 독립된 수도 꼭지가 1개씩 있었다.

목욕탕 뒤편에서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이

연탄을 쓰다보면 부서지는게 생기게 마련이다.

가정집이 그런 것이 생기면 양도 많지 않으니

버리게 되지만 많이 쓰는 곳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파연탄을 여러개가 모이면

한장씩 눌러서 만드는 1개용 연탄틀이 있었다.

ㅎㅎㅎ

여러 성격의 가게들이 있다보니

애들 이름은 덕수는 구두가게 아들이요.

성구는 국숫집 아들이고 병태는 고깃집 아들...

대층 이런 식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형제는 철물집 아들...ㅎㅎㅎ

어린 시절이라 호기심도 많았으니

종료도 다양한 가게의 또래 아이들은

서로의 가게에 들어가서 놀기도하고

돼지본드가 진동하는 구두만드는

과정을 신기해했고 

책방에 수없는 책들을 넋놓고 보기도하고

반죽된 국수가 쇠바퀴에 밀려나와

대나무에 걸어 횃대에 건조하는등

지금으로 보면

진풍경을 일상으로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집 가족에게

일생일대?의 대단히 위험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탄개스 중독사고였다.

이웃 가게 아저씨와 아지메들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문을 열었는데 ....

그날은 어머니도 안보이고

늦은 시간까지 문이 안열리는 것을 보고

가게내 소리도 지르고 기척도 없는 것에

널판지로 된 가게문을 부수고 집으로

들어가셨단다.

그리고 세 모자가 방안에서 ...

다행히도 요즘 말대로 하자면

#골든타임에 ...

어쨋든 우리는 이웃 아지매가 준

머리가 얼어버릴 것 같은

동김치를 마시고

다행히 살아날수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음날부터  

연탄을 쓰지 않게되었고 

지금으로 보면 원시적인 전기장판

비스므리한것으로

난방을 하게되었다.

(비닐 장판과 콘크리트 바닥에

구리선이 얼기설기있는 ...

또한 60~70년대의 겨울에는

연탄개스 중독사고는

흔한 일이었다.

요즘 연탄불이나 번개탄을 놓고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그런데다가 그때는 집에 벌레며 쥐새끼들이

자기집 다니듯이었던 시절이라

애들한테 이런 말을 한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이런 말을 한다면

꼰대 소리한다고 할지 모른다.

ㅎㅎㅎ

@뱀다리

상가 이름이 잘 생각나질 않았는데

동생이 기억해냈다.

시계방 필성당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삼남매가 있었다.

금주 누나와 동갑내기 은주

막내 사내동생이 하나있었는데 이름은 ?

나중에 어머니에게 조카가 되며

나에게는 누님내외가 하신 신보당이 있었다.

2남매가 있었는데 아들하나에 딸 하나.

또한 우리 상가 맞은편에는

간장집이 있었는데 4남매가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덕건이와 도연이

여사아이들은 연미와 연화.
상가내에는 얼음집이 있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2남매를 두셨다.

누나와 아들은 갑장인 성구.

그리고 식품정이 있었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

자매?를 두셨다.

양복집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아들은 이병이와 동창이었다.

일등양화점이 있었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

3남매를 두셨다,

큰 누이 큰 아들에 동갑 덕수

쌀 가게도 있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자매가 있었다.

페인트가게는

돼지엄마라는 어머니와 아저씨

아들이 하나있었는데

나보다 위여서 형이라고 불렀다.

당구장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이 하나였었는데

개인 당구대를 가지고 다녔다.

당구를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맞은편 시장통에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 4남매를 두셨다.

형이 둘이 있었고 동창 여자 친구와

여 동생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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