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울유유 5

흰코끼리 2022. 12. 5. 21:39

어린시절 대청마루가 생각났다. 어린시절 대청에서 누위 천정의 서까래를 보면 나는 생뚱맞게 "고래뱃속"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보아도 역시 그랬다. ㅇㅎㅎ
나의 어린 시절의 한옥은 솟을 대문이 없었다.
한옥에서 두번이나 살아봤지만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
30년이지났건만 당장이라도
마당에서는 어린시절의
많은 것듵이 눈앞에 있는듯했다.

무지?의 소산이겠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얼마전 보았던 서소문 근처 "약현성당"같은 느낌...

코로나로 출입이 안된다는 배화여전 수위아저씨의 말씀이 있었지만 못이기는 척 하시며 들어가게 해주셨다.
드디어 필운대와
"숨바꼭질"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송석원시사의 주 활동무대였던 인왕산의 다른 이름은 필운산이다. 1537년 명나라 사신 공용경(龔用卿)이 황태자의 탄생 소식을 알리려고 한양에 들어오자, 중종은 그를 경복궁 경회루에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중종은 북쪽에 솟은 북악산과 서쪽에 솟은 인왕산을 가리키면서 새로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당대의 최고의 대접은 손님에게 산이나 건물 이름을 새롭게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한양 주산의 이름을 새로 짓게 된 공용경은백악산을 ‘공극산(拱極山)’ 인왕산을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필운산이라고 이름을 지은 까닭은 ‘우필운룡(右弼雲龍)’이라고 설명했는데, 운룡은 임금의 상징이다. 인왕산이 임금을 오른쪽에서 돕고 보살핀다는 뜻이다.
와우! (엷은 붉은색 기운이 도는 화강암이다.)
"필운대"
弼雲臺’ 석 자 옆에는 이항복의 9대 손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찾아와 조상을 생각하며 지었던 한시가 새겨져 있다. 조상님 옛집에 후손으로 찾았더니 / 我祖舊居後裔尋 푸른 솔과 돌 벽에 흰 구름 걸렸네./ 蒼松石壁白雲深 늠름한 풍모는 백 년이나 오래더니 / 遺風不盡百年久 할아버지의 의관은 옛 날과 같아라./ 父老衣冠古亦今 癸酉 月城 李裕元題 白沙先生 弼雲臺

가객 박효관(朴孝寬, 1800~1881)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계유감동(癸酉監董)’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옆에 박효관을 비롯한 이유원 일행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면, 박효관은 이유원 일행과 함께 이곳에 와서 풍류를 즐기며 한시를 바위에 새기는 일을 돌봐주었던 것 같다. 위항의 가객인 박효관은 필운대에 운애산방(雲崖山房)을 마련하고 노래를 부르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선 "필운대"
정선 "필운대 상춘"
김윤겸 "필운대"

정선 "윸각현" 정선이 육각현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다., 후배 조영석이 “농은당에서 육강현을 바라보았다.”고 썼다. 농은당은 김창흡의 형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집일 가능성이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으며, 육강현은 육각현을 소리 나는 대로 쓴 듯하다. 왼쪽에 크게 그려진 집이 바로 농은당이고, 언덕 너머 솔숲 사이의 큰 바위가 필운대, 그 너머 고개가 바로 육각현이다.

장시흥 "필운대"

@뱀다리
바람난 공자와 다음 백과사전과
기타 글들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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