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선생을 권력의 심장부?에서 만나다니...그러나 이곳은 지금 남녀노소들의 요즘 말로 한참 뜨는 장소인거같다. 그런데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사람들이 길가에 걸려있는 걸개를 보며 주인공들을 잠시라도 생각해볼지도 모르니 말이다. (본래 한국독립당은 일제치하 만들어진 정당이었는데 현재 삼청동의 한국독립당은 전혀 다른 도깨비?같은 정당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정당의
정강.정책과 역사등 기본적인 행적이 모호했기때문이다. 그저 이름만 빌어쓴 모양인데... 아무튼 애국지사들을 욕되게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낮익은 도산 선생과 우국지사들을 뵈니 뭐랄까...생뚱맞게 선생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드디어 만나게됬다. 오래된 연인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바위속에 글씨는 살아움직여 꿈틀거렸는데 붉은 주사의 기운은 벌써 내마음을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역시... 필체의 내공이 뭐랄까... 거침없는 기운이 바위에 넘쳐났다. 影月巖,뜻은 대략...직역하면 달 그림자 바위 이런건데... 광해군 시절 "이기설"이라는 문신이 인목대비 폐비후 은거하며 살았던 곳이란다.
인왕산이 뒤로 보인다. 역시 오늘은 운수대통한 날이었다.
"재동 백송"이다. 언젠가 본거 같기도 한데...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도 있는 것을 보았는데 푸른 수피가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으로 변한단다. (오동나무는 나이가 들면 심재부분에 구멍이 메워지고 엄나무도 나이가 들면 수피에 가시가 사라진다.) 600년이나 되는 노거수니 백발 할배가 된 것일까. 우리나라에 할아버지 나무는 보통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소나무 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백송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 백송은
재동외에 종로 조계사, 고양 송포, 예산 용궁리,이천 신대리등 다섯 그루가 지정되어있었다.
외국인 아이가 엄마품에 안겨서 내려오고있다.
모르긴해도 관광에 신난 엄마아빠에게 아이가 힘들어서 안아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작전을 엄마는 모르는척하며 안아주었을 것이다. ㅎㅎㅎ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1910년 4월19일자 대한매일신보 3면에 " 본인소유 초가6칸의 집문서를 알지못하는 가운데 분실하였기에
이에 광고하오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 ... 경 북서 삼청동 2통4호 신채호 백 이라고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적었다. 단재가 적시한 이 주소지는 여러 사람을 거쳐 현재 불교재단
법인이 소유하고 있고 칠보사의 주차장으로 쓰이고있다. 또한 집터의 소유권을 되찾으려는 선생의 유족들이 소송이 있었지만 국가가 사유재산을 찾아줄 의무가 없다며 원고 패소한바있다. 독립운동 전문학자인 신용하선생은 집터에 표석하나 없는 현실을 개탄하셨다.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삼청동문과 화기도감"이 그림밑 부분에 보인다. 옛그림으로 본 서울/최열 1780년대에 그린 "도성도" 작자 미상,서울대 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