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구조물인 보강토와
월암동 바위의 대비가 뚜렸하다.
인왕산 주변에는 흔한 일이지만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까?
아니면 차선일까?
현실은 과거의 결과요,
미래의 거울이다.
"반면교사"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경복고등학교는 난생처음인데
내가 보기에는
"천하 명당" 자리였다.
뒤로 백악산이요,좌로 낙산에
우로는 인왕산에 앞으로는 남산이
얼마나 근사한가 말이다.
그런데...
듣자하니 청와대 경내에 그런 각자가 나와서 대단한 역사적
발견 운운하며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다고한다. 그러나 전문가 복수의 말로는
오래되지않은 각자로써
특별한 의미를 두지않았다고해서 "태산명동서일필"...비스므리
경복고 뒤로 백악산이 보인다. 젊은 새싹들이 좋은 기운을 받아서 나라의 큰 재목으로 쓰여지길 바란다.
운강대의 유래가 써있다.
여기서 운강은 조원의 호였는데 그는 29살때 선조 별시문과에 병과 급제했다. 사실 조선시대때 과거에서 급제했다는 것은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뽑는 숫자가 워낙 적어서 하늘에 별따기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기때문이다. 또한 그는 31살때 사간원 正言으로 선조에게 탕평계책을 상소했고 당파의 수뇌를 파직하라고 했으니 "조선 선비의 기개"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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