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을해보았다.
1962년 기을 어느때
엄마는 당신의 궁궐에서 한칸을
내어주시며 일년가까이
먹여주고 재워주셨다.
그리하시다 엄마는 만삭으로
더 이상 있을수 없으니
나는 나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시 나의 성정이
미련한터라 궁 바깥을
이리 저리 헤메었으니
(지금도 산길이나 도심길은
물론 인생길도 헤매는 일이
종종 있고보면 본시
그리된게 맞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름도 一秉 아닌가?
ㅎㅎㅎ)
시간은 한밤중이 되었고
엄마는 그 탓인지
말로만 들었던 "난산"이 되었다.
어머니는 하늘이 쪼개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몇차례 겪으시더니
삼신할매와 감악산 할배의
도움과 분만을 도와
주셨던 작은 외할머니와
동네 산파 덕분에
세상 바깥으로 간신히 나왔구나.
그러나 미로를 헤맨 탓에
탯줄을 목에 걸고 나왔으니
그런 내 모습에 주위에서는
중?에 팔자라는 소리도 들었겄다.
그렇게 요란한 탄생은
뜨거운 기름가마에
들어가서 황천길을
건널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액맥이었는지
한번 된통 당한 덕에
별일없이 잘 지냈고
세해뒤에는 동생 이병이를
갖게되었다.
엄마는 동생 이병이가
언제 생겼는지 알수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동생이 공짜?인지 덤인지
알수없으나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건병형님의
환생일지 어떨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먼저간 건병형님은 동네에서
천재?소리를 들을정도로
똑똑했다고 엄마와 고모는
이구동성이었는데 이병이가
머리가 좋은게 그럴지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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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가업이된 덕흥철물앞?에서 엄마와 형제가 사진을 찍었다. (아버님은 사진에 안보이시는데 안찍겠다고하셔서 옆으로 빠지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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