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감악산 양가산댁 25

흰코끼리 2021. 4. 18. 22:10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5시에 강화집에서 출발했다.
선영이 있는
포천 예래원까지는 2시간...
어제 제물은 준비했고
보통 예래원 방문은
봄의 한식날과 추석전 벌초즈음에 간다.
그러나 작년은 코로나19에도
혼자 가보기는 했지만
예래원을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혼자서
증조부이하 아버님까지
계신 예래원에가서
간소하게 제물을 올려 인사드렸다.
(과일은 삼색과일 운운하지만
청견으로 제주도산 오렌지?같은
것으로 단품을 올렸고
참외를 맛배기로...ㅎㅎㅎ)
...
(지극한 마음을 표한것이
"예"이며 제사와같은 의식이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선조들이 가졌던
유교적 가치관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시각은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도
내 의도는 아니지만 내 처지는
빵점? 자손이 되기 충분할 것이다.
된장...ㅎㅎㅎ
그래서 나는 때마다
항상 가족 모두는 아닐지라도
동생과 자식등 여럿이 함께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올해도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예래원을 올때면
증조부님과 증조모님을 비롯한
선조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은
물론이요,
몸둘바 없는 유구무언에
죄인의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날이 올지 알수없지만
글쎄 지금으로 보면
나만의 욕심이오,
무망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쩝?ㅇㅎㅎ)
오늘의 예상 경로와 방문지는
1.포천 예래원.
2.연천군의 미산면
정발장군 묘역 근처 큰고모님 묘.
3.적성 가월리 넷째 고모댁.
4.신촌 어머니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지나가는 길의
명승지가 여러 곳인데 이번은
고구려 성이었던 "당포성"을 골라보았다.
포천에서 연천으로 넘어오면
꼭 들르고싶은 유적중에 하나가
당포성과 숭의전이었다.
시간도 그렇고해서 숭의전은
다음으로 미루고 당포성에 집중하기로...
지나가는 길 주위에는
차탄천 에움길과 백의리지층...
좌상바위와 아우라지 베게용암에
임진강 주상절리등...
율곡 이이선생의 화석정등이다.
이렇게 주변에 명승지를 두고 있었던
선영은 선산이 늘목리였다.
늘목리의 진산은 감악산일 것이다.
(감악산은 경기 오악으로
양주 도적 임꺽정의 전설과
감악산 정상의 불상의 비석과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협곡에서
중국군에게 몰살 당했던
"비극의 장소"였다.
최근에는 출렁다리로 더욱 유명해졌다.)
감악산은 파주와 연천을 걸쳐있고
꽤많은 등산객들에게 알려져있다.
나는 이미 "트레일런닝과 지오트레킹"을
통해서 수년전부터 지난 겨울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을 다녀갔었다.
감악산은 물론 고대산과 금학산등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등록된
다수의 곳도 다녀갔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수일전부터 이덕일의
"정약용의 형제들"을 읽던중
책 내용에 다산선생이
적성,파주,마전,삭녕등에서
암행어사를 지냈는데
정조재임 시절이었다.
정약용의
[교지를 받들어 적성촌의
한 집에 도착해 염찰하고 쓰다.]
의 글에는 당시 농촌의 참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
놋수저는 이미 이정에게 빼앗기고
무쇠솥은 이웃 부자가 빼앗아같네...
다섯살 큰아이는 기병으로 올라있고
세살 작은애도 군적에 올라있네
두아이 군포로 500전을 바치고 나니
죽기나 바랄뿐 옷이 무슨 소용이랴..."
1794년 10월29~11월15일에
그의 암행어사 기간이었다.
처참한 내용이었는데
연천은 그나마 다른 곳보다는
그중 나았다고하니 다른 곳은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우연치고는...ㅎㅎㅎ
아무튼 예상 일정대로
당포항을 잘 둘러보고
(사방이 탁 트여서 주변을
조망하기 좋았다.
아쉬운 것은 군부대 참호같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의도?인지는
알수없었다.
이야기꺼리(스토리텔링)를 만들어서
당포성을 보다 재미있고
의미있게 둘러볼수 없을까...라며
당포성을 내려왔다.
전에는 삼화교를 건너서 보자면
당포성 주변과 적벽의 주상절리에
임진강등과 어우러져 근사했다.
수량이 많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이번에는 하천변에서 바보는 풍광을
시도를 해보려했지만
(하천에 캠핑차들이 여러대가 있어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았지만
마땅치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다음 차례인 미산면 정발장군묘역 근처
큰 고모님께 들러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참외"를
조촐하게 올려드렸다.
그런데 고모님이 잠들어 계신곳에
하얀 민들레가 몇송이 보였는데
(노란 것과 달리 토종이라던데..)
괜실이 할미꽃을 보는 것 같은게
고모님 생각이 더욱났다.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하고는
(이번에도 정발장군 묘역에서
큰고모 묘를 못찾아 잠깐 헤맸다.
(큰고모부님은 정발장군의 후손으로
일제시대 사할린에 징용을 가셔서
그 곳에서 돌아가셨다.)
한두해도 아닌데 이것은 결례도 아닌
한심한 내 기억력의 부재였다...)
그렇게 큰고모와 이별을 하고
가월리 고모댁으로 갔더니
고모님께서는 미리 기다리신 것처럼
마당에 나와 계셨다.
사실은 고모네 집은 옥상에 물이 새서
색상강판으로 지붕 공사를 하고있었는데
그것을 구경하고 계신중 이셨다.
그래서 쌀과 전에 보내주신
김치통을 몰래 놓고 온다는 계획은
무산되었고 예상에 없던
고모님과 상봉이 이어졌다.
작년한해 코로나19로 못뵈었더니
부쩍 세월의 흔적이 완연했다.
신촌 어머니도 그렇지만
연세드신 분들은 세월의 시계가
무심하고 엄격하게 작동되었다.
그런데 고모님댁에 피어난
보라색 들꽃을 내가 가리키며
"저게 무슨 꽃이에유?"
그랬더니 고모님 왈,
"별거아니다. 어디서 씨가 날라와
집 주위에 여기저기 있는데...왜...?"
나 왈, "가져 갈라구유"
고모님 왈,"그 걸 뭘라구 가져가냐
별것도 아닌데..."
그래서 결국 못 가져왔다.
예전에 고모님댁에서 목단을
가져왔는데 한동안 잘 살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멧돌에 떡메까지
(연천에서 흔한 현무암으로 만든...)
집 마당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그렇게 고모님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해서 고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고모님이 밥을 안먹고간다며
성화를 하셨는데 급히 빵과 기름이든
( 신촌에 와서보니 참기름이 아니라
매실효소였다. 색깔이 비슷하니...ㅎㅎㅎ)
소주병을 주시더니 신촌 어머니께
드리라신다. 내가 강화 쌀을 드렸더니
"농사짓는 집에 왠 쌀이냐 "라고
하셔서 나는
"강화쌀도 맛있으니 들어보시라"했다.
평생 농부로 사신 고모부내외께서
강화쌀을 맛보시고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라는 생각이
미치니 내입가는 절로 미소가 번졌다.
ㅎㅎㅎ)
파주 화석정과 율곡 이이 선생의
생전 사셨던 곳과
고려조 경순왕릉의 이정표를 어는덧
지나니 벌써 당동IC가 눈앞이다.
임진강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을
얼마간 지나니 이편에는
무장공비 섬멸비가 건너편에는
낮익은 배수펌프이 반가웠다.
강건너에는 전류리 포구가 보였다.
이윽고 통일 전망대가 눈앞에 사라졌고
벌써 성산대교가 보였다.
신촌을 알리는 교통 표지판이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의 여정도 이제는 마무리다.
...
나에게 말했다.
"수고했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이한 문수산 트레일런닝  (0) 2021.04.25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0) 2021.04.23
기이한 앵자봉 트레일런닝  (0) 2021.04.15
ㅡ기이한 앵자봉 트레일런닝 외전  (0) 2021.04.13
자산어보 정석조본  (0) 2021.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