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이한 문수산 트레일런닝

흰코끼리 2021. 4. 25. 09:48


















































2019년 4월 27일 문수산 트레일런닝후
처음이다.(물론 그전에도 여러번...)
2018년과 2019년 연이어가게 된것인데
문재인 정권 남북정상회담 원년과
남북평화 염원으로 올랐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계는 되돌려지고
코로나19 에 어머니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세상만사 마음대로 될수없으니
그저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일상을 대할뿐이다.
...
작년 가을 박정웅선생님께
지질학 강의를 듣고 나서는
산과 돌 보는게 전과 달라졌다.
예를들면 전에는
빠른 속도로 산길을 뜀박질했다면
지금은 주위를 자주 둘러보게되고
그러다보니 속도는 늦어지고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도 많아졌다.
그런 건달? 트레일런닝을 하니
역시 문수산도 다르게 보였는데
여태 본 문수산보다 많은 것이 보였다.
이전까지만해도 특히 전에도 말했던
"역암"이
정상의 남장대 주위에만 보였다면
오늘에서야 알았다.
문수산 전체가 역암 덩어리였다는 것을...
세상에...문수산은
거대한 "퇴적암층"이었던 것이다.
일전에 선생님이 주신 교재에 보니
문수산은 마지막 빙하기 시절까지만해도
바닷물속에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상식으로는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으로
문수산이 얼마나 퇴적이 이루어졌는지
알수없다.
또한 선생님의 말씀처럼
일반적인 퇴적층만이 있는지 아니면
육지화되서 또 다른 변화가 있었는지도...
아무튼 어떤 브로거가 글에 쓰길
"역암으로 성벽일부가 쓰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쓰여져야 할거같다.
"문수산성은 역암지층을 기반으로
석재 또한 자연적인 역암 지형을
이용하거나 가공해서 축성했다."
...
문수산은 해발 373m이니
높지 않은 산이며
산성도 문화재청에서 쓰여진
글에 보니 적은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크기가 작다고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
지리나 역사적으로 보아도
문수산과 김포의 역활은
적지않다고 봐야한다.
근세에는 조선시대에
병인양요로 부터해서 정묘,병자호란에
고려조때는 대몽전쟁등 미증유의
역사적 격변기에 문수산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또한 김포는 한양의 길목으로
조강을 사이로 비보처인 강도와
서로 마주보고있어 군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했다.
더구나 김포는 한반도 쌀농사의
시발이었으며 지금은 아니지만
김포쌀과 평야는 명성이 대단했다.
(강화 농업대학에서 얼핏듣기에는
한강 주변 강화, 김포 ,여주, 철원의
쌀맛이 좋은 것은 한강의 풍성한 퇴적과
부산물로 농업이 융성했기때문에
쌀농사가 좋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특별한 것도 아닌게
인류 문명 발상지인 동양의 황화문명이나
중동의 이집트 나일강같은 것 을
본다면 미루어 짐작할수있다.
...
김포의 화려했던 명성이
다시한번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뱀다리
박정웅 선생님께 문수산을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문자가 바로 왔다.
"중생대 쥐라기에 만들어진 역암입니다.
지질학에서는 문수산층이라고 합니다.
통진과 대명항 부근에
김포탄전이 있었습니다."
ㅇ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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