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이한 자산어보 5

흰코끼리 2021. 5. 5. 20:44



...
자산어보를 보다가
꼬리에 꼬리를 이어서
여러 책을 읽다보니
이런 질문을 가끔하게 되었다.
"그들은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도올은 그 부분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했는데 대략에
내용은 아래와같다.
"조선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특히 남인들은
조선의 미래를 현정권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수없었다.
권력은 수구 보수파에게 있었고
조선이 갖는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자강론이나
개조론이 아닌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천주교요,기독교였다."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창조주 천주는 태초에
세상을 만드신 것처럼
잘못된 이 세상도
바로 잡을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었다.
천국의 길이있는데
고통이야 감수할수있는 것이었다.
...
조선왕조 말에는
모든 것이 뒤틀어져있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는 이기설과 사단칠정에
상복을 몇년 입어야야하는 복제론등
백성들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공허한 애기들로 시간을 메웠다.
그리고 주류와 다른 생각들은
정적을 죽이거나 유배를 보냈다.
그사이에 인민들은 임진왜란과
병자,정묘호란등 전쟁통에
어육이 되었고
옷을 만드는 바늘은 말할것없고
수레와 도로에 배등
삶에 모든 것이 부재했다.
"나는 그정도 였을줄이야..."라며
나의 무지를 경탄했다...
생각해보면
1980년 광주시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온몸을 던진것이며,
1960대 315부정선거와 419혁명도
그러했고
1949년 제주 4.3항쟁도 그러했다.
민중들의 인내심은 한계까지가
문제이지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음 일들은 걷잡을 수없는
성난 파도와 같은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수없는
그들의 절박함은
비교가 적절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덩샤오핑의 "흑백묘론"의 말처럼
고양이가 까맣든 하얗든
쥐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
상고해보면
중세기 유럽을 암흑으로 물들게한
타락의 카톨릭이
마틴 루터로 대표되는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배경이었고
조선조 말 녹두장군 전봉준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동학의 탄생도
그런 학정이 배경이 된것이었다.
...
그래서 알다시피
정약전은 불투명한 미래에
민중들의 삶을 택했고
정약종은 현세는 불가하다고
생각해서 땅을 버리고 하늘을 선택했다.
정약용은 ...그래도 조선을
개조해서라도 바로 세우려는
미련이 있었다는 생각에 학문을 선택했다.
"반추"라는 말처럼 여러번 되새기다보니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맥락이 있는 것던 것이었다.
@뱀다리
어제 먹었던 미역국 맛이 허전해서
안넣던 다시다를 넣었지만
역시 맛이 모자랐다.
그래서 유레카!하며 멸치를 넣었더니
(멸치에 "멸"이 멸시할때 쓰는
멸짜였는데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 이태원은 어부들의 인식이
멸치를 하찮은 물고기로
생각한거 같다고 책에 썼다.)
역시 구수한 제맛이 났다.
(가능하면 멸치 똥이나 대가리는
제거해야 깔끔한 맛이 난다.
조그마한 것은 왠만하지만
큰것은 반듯이 제거해야 씁쓸한 맛을
없앨수 있다.)
멸치는 어린 시절 국민반찬으로
나에게도 도시락 반찬 단골 찬거리였다.
커서는 막걸리 안주로도 좋았다.
아직 멸치회를 먹어보지 못했지만
다른 물고기들처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멸치 볶음.멸치회.멸치젖...
종류도 다양한 마른 멸치에
가격도 대단한 "죽방멸치"도 있다.
10년도 넘은 일인데
(검색해보니 2011년 7월이다.)
서해안 서산 어디메를
단체로 견학을 갔다가
진풍경?을 보았는데
그 것은 바로 멸치 잡이 배였다.
선단의 구성은 멸치잡이 배가 있고
멸치를 바로 삶는 시설이 있는
배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에서 바로 이어지는 작업은
멸치는 물바깥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 속성때문인데
옛날에는 그런 시설을 배에다가
설치할수 없기에 멸치는 크기도
작고 보관도 어렵기에 닭갈비같이
하찮은 물고기가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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