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이한 황매산 트레일런닝 외전2

흰코끼리 2021. 10. 10. 15:42




























황매산 영암사지에 관한 글을 쓰려는데
두번이나 실수로 글이 날라가서
세번째 쓰고있다.
이런 일은 흔한 경우가 아니라서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정신일도하고 엄지 손가락에
눈은 동그랗게 뜨고 감시하며 쓰고있다.
...
유홍준선생은
영암사를 여러가지 예를 들며
특별함을 말했다.
1.영암사지는 오지중에 오지다.
예를들면 내가 서울역에서 19시 50분에
ktx를 타고 두시간 걸려서 동대구역에
도착했다.그리고 예약한 쏘카로
영암사지 근처 숙소에 도착한게
23시 50분이었다.
제일 빠른 교통편이라면 비행기겠지만
육상수단에서 제일 빠른 ktx기차에
쏘카까지 동원해서 4시간 가까이
걸렸다면 오지임에는 틀림없다.
1985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발행한 합천영암사지 고적조사보고서에는
...중략 여기는 서부 경남의 가야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있는
황매산의 남쪽 기슭으로
주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이다...
2.영암사의 역사적 기록이 없다?
영암사터는 남아있는 유물로 보아
하대 신라에 창건된 절이고
발굴결과 고려말까지 유지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미스테리한게 대표적 역사책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같은 것은
말할것도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매산 아래에 몽계사와 사라사터가
있었다는 기록만 있을뿐 영암사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서울대 도서관에서 발견된
<합천 영암사 적연국사비>의 탁본이
발견되어 영암사의 속전이 사실로
확인하게 되었다.
3.쌍사자석등은 밀반출 될뻔했다.
1933년 일본인들이 쌍자석등을
몰래 훔쳐가려다가 거주민들의
실력행사로 좌절되었고
해당주민들은 1959년 쌍사자석등을
면사무소에서 보관하던 것을
절마당에 다시 설치하였으며
무너진 삼층석탑도 바로세웠다고한다.
...
아무튼 사연깊은 절임에는
두말하면 잔소리 일것이다.
지금은 봄에는 황매산 철쭉제에
가을에는 억새축제로
영암사지는 때아닌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고있으니
유홍준선생의 말마따나 큰 맘먹지않은면
답사는 어려웠다고한다.
영암사지의 대표적 마스코트인
쌍사자석등은 앙증맞기도한 것이
애기사자가 까치발을 해서
석등을 끙끙거리며 들고있는 듯했다.
특이한 것은 쌍사자석등의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통일신라 시대 석공의 창작물이었단다.
더해서 절터 석축에 말뚝돌도
경주 불국사 석축과 석굴암 천정에서
사례를 볼수있는 구조와 기능이
돋보였다. 유홍준 선생은
절터의 금당기단 사방의 석축에는
사자의 묘사가 정확해서
뛰어난 석공 솜씨를 보인다고 말했지만
나는 중동지방에 고대문명의
거대신전에 그려진 사자를 상상했다.
황매산에서 내려오며
처음 마주한 한 쌍의 돌거북은
탑신과 옥개석이 없어서 아쉬었다.
어제는 잘 몰랐지만
조사당 좌우의 돌거북은 하나는
개창조의 것으로 완성도가 높아 보이며
다른 하나는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형태의 과장과 우람한 모습이었고
중창조 비석받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유홍준선생의 강의를 들은
토목과 교수는 영암사터
무지개 계단을 보고
"싸인 12도"라는 말에 감격했다는
유구라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또 지질학과 교수가 말한
<화강암 예찬>도 멋진 글이었다.
다시한번 읽게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6권의
영암사지편은
나의 이번 여행이 매우 특별했음을,
아주 행복한 트레일런닝이
됬음을 느끼게했다.
작년이었던가 ...해남 달마산
미황사의 재미난 주춧돌과
귀여운 부도의 돋을새김이
다시한번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그 옛날 석공이나 목수에 화공들은
천직이었지만 대단한 자부심으로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천재성과 작업 능력은
아무리봐도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또한 그들은 대단한 유머의
소유자였을거라는 것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