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울유유8

흰코끼리 2022. 12. 26. 07:44

2020.11.23 오전에 한양도성 트레일런닝때 이곳을 통과했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반가웠다.
단군할배를 모신 곳이다.
황학정의 머릿돌이다. 각자가 황학정 현판 글씨체와 같았다.이승만 초대 대통령 글씨란다.
황학정의 사대에서 궁사들이 남산방향의 홍심을 바라보고 매서운 눈으로시위를 당기고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이 생각났다.
黃 鶴 亭 八 景 황학정팔경 白 岳 晴 雲 : 백악청운 紫 閣 秋 月 : 자각추월 帽 巖 夕 照 : 모암석조 榜 山 朝 暉 : 방산조휘 社 壇 老 松 : 사단노송 御 溝 垂 楊 : 어구수양 禁 橋 水 聲 : 금교수성 雲 臺 楓 光 : 운대풍광 戊辰 菊月 錦巖 孫完根 題 무진 국월 금암 손완근 제 하얀 큰 산에는 맑은 구름이 자줏빛 궁전은 가을 달이 모자바위는 저녁에 환히 비치고 나무와 산은 아침에 빛나네 사단에는 오래된 소나무 어구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지고 금교엔 물소리 구름대의 단풍나무가 빛나는구나 1928년 음력 9월 금암 손완근 씀 금암 손완근 황학정에서 "조선의 궁술" 집필에 참여한 발기인 36명 중 한 사람이며, 활 쏘기를 즐겼다고 한다.(황학정 뒷편의 바위에 각자된 글이다. 산수처럼의 브로그를 인용했다.)
한말 도성 안 서쪽에는 다섯군데 궁술연습장이 있었는데 이를 서촌(西村) 5사정(射亭)이며 그중 한 곳인 등과정터이다. 옥동의 등룡정, 삼청동의 雲龍亭, 사직동의 大松亭, 누상동의 風嘯亭, 필운동의 登科亭 이 그것이다. 그밖에 누하동의 백호정, 천연동의 서호정, 장충동의 석호정, 창신동의 청룡정, 삼청동의 운룡정, 마포의 화수정 등 많은 활터가 있었는데 일제 때 활쏘기를 금하여 지금은 전통 무예로 명맥만 유지한다. (자비화님의 브로그를 인용했다.)
황학정이라는 건물은 본래 경희궁의 회상전 북편에 고종이 활을 연마했던 사정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했었다고한다. 그러나 일제는 의도적으로 궁궐의 여러 건물을 해체하고 매매했다. 황학정도 그런 사연이있는 건물인데 뜻있는 의인들이 매입해서 등과정터에 자리잡게되었단다.
"등과정"은 이른바 북악스카이웨이라 불리는 포장된 도로 옆 인도에 붙어있으며 황학정 정면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인도와 맞붙은 곳에 있다.

청와동 각자를 찾다가 얼떨결에
(결국은 청와동 각자는
찾질 못했다. 된장...)
찾은 "일세암".
계곡물의 호쾌한 물줄기같이

시원한 글씨었다.(그래서 인왕산 산신령님이 안되보였는지 "옛다..." 라며 대신 선물을 주신것 같은 느낌? 고맙습니다.ㅇㅎㅎ

일세암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북악산과 가운데있는 북한산.
돌을 깨뜨리기위한 흔적이 보였다. (청와동 각자를 찾다가...여기 어디메라는데...)
백호정은 요즘 식으로 하자면 활터 맛집같은 곳으로 궁사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단다.
백호정 각자 바위 상단 부분이 콘크리드 옹벽이다. 이곳이 개발이 안됬거나 선인들의 유적을 대하는 최소한의 도리와 기본적인 자세가 있었다면 이런 무지한 풍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호정 글씨가 어렴풋하게...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깝다.인근 옥류동천 각자도 그렇고 다수의 글씨바위가 사람들의 무관심과 관계당국 무지속에 방치되고있었다.(이곳은 그래도 안내판도 있지만 다른 곳은 찾기도 어렵고 훼손된 지형과 쓰레기로 오염된곳이 많다.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현판 글씨.(왕의 글씨는 금색을 쓴다는데 하기야 우남은 왕손의 후예임을 종종 내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근대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고 그가 대통령에서 보여준 행동은 전근대적인 업적이었다. "모순"은 이런 것을 보고 말함이 아닐까...

독립문앞의 두개의 돌기둥은
조선시대 청나라 사신들을 맞이했던 영은문의 기둥이었다. 공교롭게 두 건축물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독립문과 구시대인 청나라를 상징하는 영은문이 세대교체를 하는
장면과도 같았다.

멀지않은 곳에 각자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