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이한 반야봉 트레일런닝 외전2(부제:나와 실상사)

흰코끼리 2023. 8. 18. 07:06

남원 운봉에는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남원 터미널 근처를 우연히 걷다보니 동편제의 개조인 송흥록을 알리는 벽화골목이 있었다.
송흥록.임방울...박초월.김소희등 호명하기가 송구스런 대단한 명창들은 국악을 뛰어넘는 우리 나라의 자랑이다.
남원=춘향?이다.
보기만해도 엄청난 "원형톱"이 길에 누워있다. 모르긴해도 노면에 구멍이 있어서 안전상의 조치일 듯하다.
버스기사가 말해준 순대국집
"나유명해요"?라는 걸게그림이다.
지리산에서 이른 아침 3시15분부터 뛰었고 양갱2개로 허기를 채웠다.현재시간 12시 24분은 무얼 먹어도 맛있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배고파서 그런지 그저 그랬다.감동까지는 아니지만...지역소주가 없단다. 지방에 가면 그 동네 술을 먹는게 나의 방식인데...없어졌다는 말에 아쉬움이 밀려왔다.그러나 영혼없는? 이슬1병과 춘향이가 그려져있는 막걸리가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잊을수없는 실상사앞 하천이 흐르고 있다.
실상사앞에 목장승이다. 나에게 장승은 언제봐도 반가운 친구다.

옛 절터에서 기왓장을 모아서 낮은 탑을 만들었다.

한변의 길이가 20.5m (참고로 황룡사 9층 목탑은 22m)라면 대단한 규모였다.예나 지금이나 대형토건사업은 돈과 권력이 받쳐주지않으면 가능하지 않기때문이다.
목탑 초석이 주위에 있고 또 다른 유구가 가운데 있다.
경주의 황룡사지의 목탑은 들어봤지만 실상사의 목탑은 금시초문이다. 나의 두번의 실상사는 40년과 20여년인데...내 기억의 부재일까? 그러나 1998~1999년 유구 실측을 했으니 나의 기억은 다행히도 아직은 정상?이었다.
맛배 지붕의 용마루가 완만한 곡선미와 수직선으로 내려간 건축물과 돌담의 수평선은 호박돌의 곡선미로 조화로움이 근사했다.
철불은 흔한 불상이 아니어서 실상사하면 "석장승과 철불"로 나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일제시대에 놋그릇과 기타 수탈을 어떻게 견뎌내셨을까...이것도 영험함? 이라면 독실한? 불자들은 충분히 그리 믿을 것이리라...ㅎㅎㅎ
약사전은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하는 곳이라 한다.약사전의 전서체 글씨중 "약"자가 의인화된 모습같다가 장난 스런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같기도 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실상사 석등 "디딤돌"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단다. 그래서 인지 이리보고 저리보고 덩달아 주인공인 석등도 꼼꼼히 보게 되었다.장고통같은 기둥이 특이하다고 안내문에 써있었다.그러고 보니 석등의 기둥은 흔하게 팔각형이 있고 쌍사자같은 것들과 기타 모양과 원통형들이 있었다.

배롱나무는 고창 선운사가 근사했다.
무슨 나무인가 했더니 흰색 배롱 나무다. 일종에 돌연변이?라고 들었는데...
절은 뭐니뭐니해도 "사천왕"이있어야한다.

큰눈에 위엄과 웃음이 절로나오는 것은 민화의 "까치 호랑이"를 볼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인가...

이런 "주련"은 실상사가 여느 절집과 다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이 주련은 "실상사의 자신감"으로 보였다.
역시 절에는 연꽃이 제격이다,
수염을 강조했는데 부리부리한 눈은 흡사 요즘 "선글라스"를 닮아보였다.
이런 코는 ...역시 민중예술은 과장과 해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코가 괜시리 커보였다.ㅎㅎㅎ
네개의 석장승이 있었다는데(동서남북 그런 걸까?) 한개는 소재 불명이다.
모자는 제주의 돌 하루방을 연상케했다. 혹시 갓이나 기타의 것들을 썼던 모자의 나라? 조선의 남자를 상징했을지 모른다.
없어진 1개의 석장승을 요즘 젊은이들이 새로운 해석으로 부활시켰다.
인근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뱀사골 계곡물이다. 나는 1983?년 가을 군입대를 앞두고 무전여행을 한답시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때 이곳의 지금은 사라진 방앗간에서 수일동안 일을 하고 숙식을 해결했다.

실상사가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나는 석등보다 이 "디딤돌"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조선 유일이라는
말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조형미가 왠지 시대와 다르게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특이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이다.

조선 영조 1년에 세웠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단다. (옹정삼년 을사삼월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