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파블로 네루다 4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흰코끼리 2023. 8. 6. 07:51

마리아 파운드리
페드로스 팡디스
디에고리베라의 음반 표지
네루다와 미키스테오도라키스

네루다의 친구들은
나이와 정파 불문?으로
그에게는 수많은 친구들이있다.
그중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모두의 노래"를
오라토리오로 만들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그리스와 칠레등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은
가수와 악단 그리고 관객들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혼연일체와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네루다는 생존시
칠레는 물론 유럽등 여러 곳에서
시낭송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었다.
그의 시낭송은 대단했는데
어떤 선전선동도
그의 시낭송을 뛰어넘는게
있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였다.
네루다의 말에 의하면
체게바라는 전투중에도
그의 시를 부대원들에게
낭송했으며
그의 배낭에는 두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네루다의 시집이었다고 ...
그의 시낭송에 대한
일화는 끝이없겠지만
어떤 때는 보쌈?처럼
납치되서 시낭송을
했던 일도 있었다.
이번에 알게된 사실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의 영화음악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했고
영화에서 주인공인 조르바를
연기했던 안소니퀸과
미키스테오도라키스가
만년에 지휘 도중에
안소니퀸의 권유로
영화속의 그 유명한
쉘위댄스?를 한 것이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아그네스발차의 노래로
잘 알려진 "기차는 ...떠나고"의
작곡자로 그리스의 유명한
대중음악가로 알려졌다.
또한 정치적인 탄압으로
네루다처럼 망명의 유랑을
겪기도했는데 그의 사상은
흔히 말하는 좌파적 성향으로
분류되고있다.)
문화예술의 두 거인은
그렇게 다시볼수없는
역사적인 춤을 추었으니
어쩌면
네루다의 시는
조르바의 춤으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공교롭게
니코스카잔스키는
상당한 그리스 난민을
터키에서 그리스로 이주시켰는데
파블로 네루다도 스페인에서
많은 난민들을 칠레로
이주시킨 사례가 있었다.
둘 다 잠시 공직을 맡은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
우연이겠지만 대단히
특이한 일임에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생이고
니코스 카잔자스키는
1883년생이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25년생이다.
이들의 죽은 시기는
각자 달랐지만 꽤 같은
시대를 살았다.
(안소니퀸은 1915년생이다.)
니코스 카잔자스키와
파블로 네루다가 만났는지
알수없다.
둘다 치열한 조국사랑과
민족애가 남다른 것도 유사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그리스 출신이고
파블로 네루다는  피카소와
교분이 있는등 스페인과
그리스등 유럽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니 어쩌면
봤을 법도하다.
보았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둘이 만났다면 "이 것은 동지의 시다."
위대한 기쁨에서 말한 것처럼

환희에 가까운 포옹을
하며 뜨거운 동지애를
온몸으로 나누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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