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갔네 /박남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시집/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2010실천문학사)
봄날은 간다/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 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집『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4)
봄날은 간다 /손로원
연붕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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