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손님

흰코끼리 2021. 12. 17. 22:26





그제 읽었던 바리데기는
원전이라 볼수있는 무가에서 보자면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서천 서역국의 "생명수"를
얻어오는 고행의 이야기다.
그런데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는
북한과 중국에 영국까지 모진 고행에서
거듭나 진흙에서 연꽃이 피듯 거듭났다.
"손님"에서는 예수나 부처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거듭난 것처럼,
요셉 또한 북한 여행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구원의 눈 뜨임이 됬으니
그 또한 거듭 난 것이었다.
한국에서 "남북 분단"은 황천의
또 다른 이름이요,거듭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
외세의 강제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을 떠나서
우리는 황천을 선택할수 없었다.
분단도 우리에게는
선택할수없는 숙명이오, 운명이었다.
바리데기에서 무장승을 본 바리처럼,
손님에서 형 요한과 순남이 아저씨를
본 요셉처럼, 형제 자매와
동무들과 아저씨 아지매들은
지옥을 보게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업보?요,
숙명처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기막힌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우여곡절은 저주와 원망을
넘어야했고 분단의 처절한 아픔도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요셉은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던
형 요한과 순남이 아저씨를
비롯해서 구천에 떠도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내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해야 미래로 갈수있다는 것을
말했다고 본다.
2021년도 불과 몇일 남지않은 한국.
이데올르기의 그늘이 아직도
선악을 가르는 오늘...
다가오는 미래와 가지 않는 지금...
어짜피 오늘이 지나면
모두가 과거로 가겠지만...
미래를 내다 보지않고 아직도 과거에
매몰된 오늘의 자화상은 슬픈 일이다.
부디 손님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길 바랄뿐이다.
@뱀다리
1.바리데기를 이은 시기와 관점이
관통되는 소설이었다.
뒤늦게보게된 소설이었지만
역시 훌룡한 이야기꾼의 글이었다.
2.황석영의 손님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는데 소설 바리데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후기에 오구굿을 말했는데
그의 소설 이 오구굿을
참고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포탈에서 검색해보니
오구굿을 다음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3.도서관에 빌려온 책안에는
클로버 잎이 가끔 있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청순,순결,처음처럼...
여러가지가 생각났다.
겨울철 가녀린 클로버 잎을보며
나는 책을 읽었던 알수없는 그와
청년시절 나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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