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울遊遊10

흰코끼리 2023. 1. 24. 10:26

기차바위 능선길의 예정은 본래 자하문을 시작으로하는 도성길을 따라 탕춘대 방향으로 우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석파정에서 올라가게됬다.
그래서 생각치 못한 길로 기차바위 능선을 오르게됬다.기차바위 아래에 바싹붙은 부암동 주택가의 끝에서 기차바위 주능선을 오르며 백악산을 바라본 풍경이다.
굳센 인왕산의 화강암도 풍화는 어쩔수없다.
"관입"의 흔적으로 보인댜
기차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인왕산 정상
기차바위 능선
왼쪽으로 시작해서 문수봉과 보현봉...능선을 따라 달리면 우측끝이 북악산이다.
기차바위 능선 너머 우측 삼각산 능선은 문수봉을 시작해서 좌측으로 보현봉. 승가봉.비봉.향로봉등으로 이어진다.
좌측이 무악산이다.
기차바위 능선 하단의 "타포니"
기차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인왕산 정상.
한양도성은 축성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신식과 구식의 대비가 명확하다.
한양도성길에서 바라본 기차바위능선.
한양도성길에서 우측으로 인왕산을 바라봤다. 정상 아래에는 단종 부인의 슬픈 사연이 담긴 "치마바위"가 보인다.그 보다 아래로 가자면 정선의 장동팔경첩 "수송동"이 그려진 수송동 계곡일테다.
기차바위능선으로 갈라지는 이곳은 북한산성으로 갈수있는 "연결구간"이다.
한양도성길과 기차바위 능선 분기점에서

윤동주 시비가 있는 도성길위에서 왼쪽으로 바라본 기차바위 능선이다.
윤동주 문학관위에 "서시"가 있는 시비에서 백악산을 바라봤다.
윤동주를 만나면 백석이 생각난다.
서시를 만나게되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무계동"이 있었다는 이곳은 오늘 쉰단다. 시민들이 갈수있는 시간에 쉰다면 언제 오라는 걸까?
글쎄... 유홍준선생 말씀처럼 무계동 각자가 있는 바위를 생각하면 그 옛날 있었을 집터에서 안평대군을 상상하는 편이 훨씬 그럴 듯하는 생각이들었다.또한 호사스런? 현대식 아파트같은 한옥이 알고보니 "오진암"이라는 요정이었다.(전에 읽었던 책에서 나온 내용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무계정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물을 이건한 것이다. 안평대군의 비극적인 멸문지화를 생각해보면... 별로 좋은 생각같지 않았다. 그런데 요정을 말하니 성북동 길상사가 생각났다. 삼청각,청운각과 함께한 "대원각"으로 왕년에 한국 3대 요정이었다는데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여사가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되어 가본 적이있었다. 권력자들의 사랑방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진암이 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그럴듯 하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한 것은 어쩔수없었다.
"반계 윤응렬 별서" 반계는 무관출신으로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운영했고 갑신정변을 참여하며 대한제국 군부대신을 맡기도 했다.그런데 을사늑약후에는 국채 보상운동을 끝으로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윤치호의 아버지요,윤보선 전대통령의 큰할아버지다.그의 집은 "부암정"이라 불렸고 한옥과 양옥이 섞여 있다는데 멀리서보니 사진으로 본 2층 벽돌집과 3단 축대로된 한옥이 보였다.현재는 주인이 여러번 바뀌어졌고 개인 소유로 일반인은...운 좋으면 1년에 한번 "오픈하우스"될때 볼수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볼뿐...
"현진건"하면 빈처? ...그렇게 나의 상식은 얄팍했다.교과서에서 보았고 일제시대 즈음에 소설가라는 정도다. 그러나 얼마전 유홍준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한국 현대문학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중요한 인물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그의 성향이 민족주의와 사실주의에 낭만적이라는 말까지 있었다.책 제목도 "운수좋은 날과 술 권하는 사회"등 내 입맛에 딱이다. 은근히 백석 냄새도 나는 것이 조만간 그를 만날듯하다. 왜냐하면 나의 손이 벌써 중고책방에 전화를 ...
기차바위 능선뒤로 인왕산과 무악산이 보인다.

겸재의 장동팔경첩중 "창의문" 언젠가 북악산에서 이런 모습이 나올지 볼 예정이다.두해전 한양도성 트레일런닝때 바라보았을텐데 기억이 전혀없었다. 그런저런 생각에 뜀박질 본능이되살아나 하산길에 가볍게 뛰어보았다. 백내장 수술과 동절기 날씨등 여러가지 이유로 뜀박질을 제대로 못한지 두어달은 된듯하다.
창의문에서 기차바위능선 방향 초입에 있는 꼭대기 바위 사진이다.어떤 학자가 장동팔경첩중 창의문에 기차바위 정상의 바위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긴가민가하는 하면서

추정되는 타포니 바위를 발견했다.
이 바위가 맞을까 갸우뚱했지만
인왕산 정상과 기차바위 능선
분기점 주변의 바위는
이것밖에 없으니 이거다...
생각하며 손으로 쓰다듬어봤다.
정선의 손길과 나의 손길이
함께 했다는 생각을 하며...

선생님께 인왕산을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더니...ㅇㅎㅎ

인왕산 정상에 "해골바위"는 나도 보았지만 기차바위 것과는 크기와 모양이 달랐다.

안평대군의 집터였던 "무계정사" 에는 이런 각자가 남아있다는데
언제일지 손 꼽아볼란다.

"청계동천" 각자는 무계정사터

바로 옆이었다.이런...
이곳도 역시 다음 도전 대상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꿈꿨다며
안견을 불러 그려진 불세출 명작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다수가 죽었다며
소름돋는 말을 하기도했다.
알고보니 몽유도원도의 찬문을
쓴 성삼문과 김종서등
가까운 지인들이 죽었기때문이다.
안평이 꿈에 본 무릉계곡은
현실세계에 대한 도피안이었을까?
부디 그 곳이
편안한 세상이기를 기원해보았다.
그런데 무계정사 주인인

비극의 인물 안평대군
가문을 생각해봤다.
왕인 조카 단종을 죽였으니
이제 수양은
돌아올수없는 화살이요,
폭주하는 열차가 되었다.
동생 금성대군도 그렇고
그의 형인 수양대군이 권람같은

공신들에게 제수씨와 조카등이
노비로 내쳐졌다.
성삼문을 비롯한 수많은

선대의 신하들은 어육이되었다.
그러나 예종과 성종등 두아들에

그들의 부인이었던 한명희의

두딸이 어린 나이에 죽게되는

업보?는
( 연산군때 한명희를 비롯한 공신들의
부관참시도 그렇다.) 혹시...그렇다면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의

골육상쟁일의 업보일지
뭔지 무심한 하늘은
수양과 공신들을 조롱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권력은 유한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대도 추악한 권력은
천년만년 사람들에게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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